상담소

포웰의 고민상담소 #12. 계속되는 실패 속에서도 하고 싶은 일들은 많은 ADHD

상자밖 2025. 11. 17. 09:00



트위터를 통해 모집했던 고민에 대한 답변 내역을,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분들도 보고 참고하실 수 있도록 본 티스토리에 아카이빙하고자 합니다.

고민으로 들어온 사연은 압축 및 각색하며 개인의 신원이 특정될 만한 정보를 최대한 가렸으나. 혹시라도 추가적으로 블라인드를 원하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편히 이메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원본 답변에 없던, 새로 추가한 내용은 이렇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열두번째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커리어에 고민과 걱정이 많은 20대 후반입니다. 저는 적성에 많지 않는 간호학과를 나쁜 학점으로 간신히 졸업한 후, 몇 년 간 여러 병원을 다녔지만 모두 오래 다니지 못하고 금방 퇴사했습니다. ADHD가 있다보니 (진단을 받은 후 병원을 조금 다니다가 현재는 끊은 상태입니다) 실수가 잦고 하고 싶지 않은 일에 집중하기 어려워 일어나는 일 같습니다. 앞으로 제대로 이 일에 실력을 키워 더 큰 병원에 다니고 싶은 마음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가 가보지 않은 다른 다양한 길(개발이나 컨텐츠 크리에이터, 일반 사무직, 패션업 등)에 도전해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되는지, 어떻게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늘 피곤하고 기운이 없어 시간 및 자기 관리를 못 하고 있고, SNS나 드라마 등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바쁜 와중에도 자기 계발을 하며 멋지게 사는 것 같은데, 저만 게으르고 멍청한 사람 같아서 괴롭습니다. 어떻게 해야 저 자신을 바꿀 수 있을까요? 

 

 

<답변 전문>

 

 

안녕하세요, OO님

아마도 트위터를 보셔서 아셨겠지만 제가 갑작스럽게 이직 준비를 하느라 답장이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점 양해 부탁 드리며 우선 말씀 주신 내용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답변을 드려봅니다.
(저는 전문상담사나 의료관계인이 아니므로 어디까지나 참고용으로만 봐주시면 감사 드리겠습니다.)


1. 추천 드리고 싶은 것 한 가지: 일단은 자신이 잘한 일들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인정해주세요.

학점이 어쨌든 우선은 대학을 가셨고, 그곳을 졸업 하셨습니다. 

(수많은 ADHD 환자들이 대학을 중퇴하는 것을 고려하면, 이것 역시 뚜렷한 성과입니다.)
취업이 얼마나 오래 걸렸든 서류와 면접을 통과하여 입사를 하셨습니다. 

(세상에는 한번도 이런 절차를 밟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퇴사를 했건 어쨌건 5년 간 틈틈히 다시 취업을 시도했고 

(그 일을 썩 잘하거나 적성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괴로워하면서도) 

또 입사를 해봤던 경험들이 있습니다.
모두 도전이고 노력이며 승리입니다. 그것들을 스스로 인정하고 칭찬해주셔야 합니다.

주변의 잘하는 분들(잘 되는 친구들, 인스타에 나오는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고, 그냥 나 자신에게만 최대한 집중해보세요. 
(당분간 SNS를 삭제하시거나,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친구들을 멀리하는 것도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나의 못난 면이나 실패한 것까지 남에게 잘 공유하지 않습니다. 인스타그램에는 더더욱 '갓생' 사는 것만 전시하지요.
그분들에게서는 best version만 보고, 나에게서는 worst version을 들여다 보니 당연히 괴로우실 수 밖에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2. 자신이 ADHD인 것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치유의 과정을 시도하세요.

메일 내용을 보았을 때 OO님이 ADHD 진단을 받기는 하셨지만, 아직 ADHD 특성이 어떤 것인지나 이를 어떻게 다루는 것이 효과적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계신 것 같습니다.
ADHD란 기본적으로 '발달장애'에 해당합니다. 뇌의 구조 자체가 일반인들과 다르기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해내는 데에 있어 남들보다 훨씬 많은 어려움을 겪고, 관심사 역시 이곳저곳 다양하게 분산되며 한 직장에 길게 다니기 어려워 합니다.
또한, 사회에서 '마스킹(정상인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는 것)'을 하느라 에너지 소모가 많고, 타인보다 예민할 때가 많아서 하루를 열심히 보낸 후 귀가하면 힘이 없어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일도 허다합니다.
그렇기 떄문에 약을 꾸준히 먹어야 하고 (제가 보기에 효과를 보려면 최소 3달~6달은 걸리고, 넉넉히 잡으면 1년은 필요합니다) ADHD인들을 위해 나온 책들을 읽고 실천해보는 것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우선은 다른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나의 'ADHD함'에 집중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병원을 끊은 것이 너무 멀거나 의사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여 그랬던 것이라면, 더 가깝고 좀 더 웹사이트나 사진의 인상이 믿음이 가는 다른 병원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꾸준히 한번 약을 먹여보세요. 스스로 맞지 않다거나 효과가 없는 것 같다면 그렇게 얘기하고 용량이나 종류를 바꿔보세요.
약을 어느 정도 드시다보면 ADHD인이 생활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책이나 온라인에서 이래저래 찾아내실 수 있으실 겁니다. 본인에게 맞는 약을 제대로 복용해온 상태라면 이런 일을 실천하는 게 예전보다 덜 버겁게 느껴질 것이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ADHD라서 남들보다 어느 정도 부족할 수 밖에 없음'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라 생각해요. 
저 역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고, 그 무슨 일이든 슈퍼맨처럼 다 잘해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제 장애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나니 내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잘 하는 것으로 목표를 하향 조정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 '왜 너는 남들처럼 걷지 못해?'라고 다그치면 안 되는 것처럼요.

또한, ADHD 경우 보통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자아상이 있기 때문에 우울증이나 조울증, 불안장애와 같은 공병이 많은 편입니다.
다시 병원에 간다면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도 검사를 같이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3.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이 많으신 것에 대하여...

이건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에 나오는 방법인데요.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면 그것을 한주에 하나씩 골라서 조금씩 시도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예를 들어, 옷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휴일 하루를 잡아 패션 잡지를 들여다 보면서 사진들을 스크랩하여 나만의 패션 룩북을 만들어본다거나, 작사를 하고 싶다면 원데이 작사 클래스를 들어본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런 작은 시도를 반복하다 보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게 좀 더 나랑 잘 맞는지, 내가 막연히 환상만 쫓던 것은 아닌지 알 수 있게 되어요.

더불어 여러 가지 직업들에 대하여 '나는 그것을 왜 하고 싶은지', '이 직업들의 공통점은 무엇인지',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등을 손으로 쭉 적어나가시다 보면,
나의 내면에서 가장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나열하신 직업들을 제가 봤을 떄에는,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는 것' 그리고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의미있는 존재가 되는 것', '인정 받는 것'을 원하시는 듯하여요. (만약 틀렸다면 죄송합니다.)
이런 욕망들은 굳이 직업을 바꾸지 않더라도 지금 하고 계신 일을 계속 하면서도 채울 수 있고요. 
봉사활동이라든가 심리상담, 누군가와의 친밀한 관계를 쌓는 것 등의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충족할 수 있는 일 아닐까 싶습니다.
때문에 내가 지금 당장 피상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다, 그 안에 숨어 있는 욕구가 무엇인지 한발짝 더 다가가서 깊숙하게 바라보셨으면 합니다.
(다만 ADHD인들은 이렇게 다가가는 것 자체가 이루어지기 힘들고 - 흥미가 워낙 자꾸 다른 쪽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 그래서 보다 적극적인 치료를 권장드리는 것도 있습니다.)


서두에도 말씀 드렸듯 저는 전문가가 아니기에 어디까지나 제 개인 경험에 의거하는 답변인 점, 한 명의 개인으로서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기억해주시면 감사 드리겠습니다.

그럼 앞으로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라며,
포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