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를 통해 모집했던 고민에 대한 답변 내역을,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분들도 보고 참고하실 수 있도록 본 티스토리에 아카이빙하고자 합니다.
고민으로 들어온 사연은 압축 및 각색하며 개인의 신원이 특정될 만한 정보를 최대한 가렸으나. 혹시라도 추가적으로 블라인드를 원하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편히 이메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원본 답변에 없던, 새로 추가한 내용은 이렇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여덟번째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타국에서 공부 중인 유학생입니다. 진로에 대해 여러 선택지가 존재하는 와중, 그중에서 특별히 관심 가는 직무나 분야는 없어 고민이 되는 상황입니다. 한국에서 포기했던 대학교를 감안했을 때 손해보는 선택은 하고 싶지 않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습니다. 또한, 제 상황 상 경제적 독립과 안정감이 가장 중요하기도 하고요.
이외에는 크게 마음이 가는 길이 없는데 졸업 시기가 다가오니 마음이 조급해지네요. 원래 직장 선택에는 그런 게 없는 걸까요? 조건에 맞으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다니게 되는 건가요? 그리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저의 전공이나 언어 능력, 학점 등의 스펙이 노동시장에서 매력적인 조건일까요? (제 생각엔 아닌 것 같아요.) 그치만 또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명확하지 않으니 어떤 쪽으로 노력해야 할지도 감이 안 잡히는 무한굴레 안에 있습니다... 곧 길 잃은 사회초년생이 될 제게 따끔한 조언 혹은 현실적인 충고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답변 전문>
안녕하세요,
이렇게 메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메일로 OO님의 이야기를 접하다보니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답변을 드릴 수 밖에 없어
다소 정확도가 떨어지거나 넘겨짚는 얘기가 있을 수도 있어 그 부분을 감안하여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1. 특별히 관심 있는 분야나 직무가 없다면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라는 시중의 생각과 달리, 저는 이게 절대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관심 있는 분야/직무가 없다면 거꾸로 말해 특별히 싫거나 한 분야/직무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가만히 보면 굉장히 많은 사회인 분들이 '딱히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이니까 한다'라는 마인드로 회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주유소 냄새가 너무 좋아서 정유회사에서 근무 중이라거나, 회계 장부만 보면 가슴이 뛰어서 회계팀에서 일한다거나 이런 분... 거~의 없습니다.
보통은 그냥 조건을 보고, 그렇게까지 적성에 안 맞지 않아서 일을 하고 계시지요.
(그리고 회사에서도 이를 알기 때문에, 특히 일반 경영 직군은 성실성이나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을 보고 많이 뽑는 편이고요.)
하여 딱히 마음에 끌리는 곳이 없다면, 조건으로 필터링해서 일단은 자유롭게 지원을 해보시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지원해서 자기소개를 준비하고 면접을 보는 과정에서 '내가 이런 면에는 호불호가 있구나', '내가 이런 면에서는 강약점이 있구나'하고 깨달으면 그렇게 자신의 갈 길을 좀 더 좁힐 수 있는 것이고요.
아니라면 일단 어디서든 일을 시작해서 부딪혀보면서 또 새롭게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그래도 여전히 막막하여 뭔가 가이드가 필요하다면 커리어넷에서 여러가지 적성 관련 검사를 제공하고 있으니 이를 해보시는 것도 방법 같습니다.
만약 어린 시절부터 생계 유지에 대한 압박감이 심하셨다면,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의식 중에 있기는 하지만 현실을 살아가기에 혹은 가족을 챙기느라 바빠 이를 제대로 들여다 보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 외 TCI나 MMPI와 같이 온라인으로도 수행 가능한 다양한 심리 검사를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알아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듯합니다.
하지만 이런 검사를 하더라도, 검사지가 딱 한두가지 정답을 알려주지는 않아요. 그냥 경향성을 알려주는 것에 그치는 정도이죠.
저는 이게 결국 인간이 어떤 길을 어떻게 걸어갈 지는 스스로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직업을 갖고, 같은 회사를 다녀도 그 사람이 어떤 팀에 속해있는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이 될 수 있고요.
그러니 벌써부터 뭔가 정답을 정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마시고, 우선은 움직여보며 생각하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2. 입시와 커리어에 대해
'학벌로 인하여 커리어에 대한 기대가 높다'라는 심정 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할 말이 아주 많기도 합니다.
트위터 상으로는 너무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그리고 제 개인 신상을 털릴까 봐 조심스러워서 밝힌 적이 없지만...
저는 OO 대학 중에 한 곳의 경영학과를 졸업했거든요. 4.3 만점에 4.0 이상의 학점으로요. 토익은 만점, 무난한 대외 활동과 공모전, 인턴 경력 등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커리어 시장에 도전할 때에도 제가 난항을 겪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그만큼 잘 안 되었을 때의 좌절과 낙담이 컸죠.
제가 특별히 면접 폐급(?)이라서 이랬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게, 제 주변 동기들을 봤을 때 정말 잘 된 케이스(=잘 알려진 기업에 들어가서 근사한 타이틀을 갖게 된)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있었거든요.
지원했던 모든 정규직에서 탈락해서 계약직으로 입사를 했다가 결국 한계를 느껴 MBA로 간 친구도 있었고, 인턴만 두세번 하다가 정규직 전환은 실패하여 스타트업으로 튼 친구도 있었고요.
겨우 들어간 기업이 너무 블랙이라 퇴사하고 대학원을 간 친구, 자격증을 준비하는 친구 등등 아주 많은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잘 된 친구, 잘 안 된 친구 사이에 딱히 엄청난 차이가 있거나 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들 열심히 살았고, OO 대학에 올 정도로 성실하고 똑똑하고, 성격도 딱히 모난 데 없는, 그런 좋은 친구들이에요.
그래서 제가 저 자신 + 친구들의 케이스를 보며 절실히 느낀 것은... '커리어(취업)이란 운이 정말 많이 따르는구나'라는 점이었죠.
(*일단 내가 가고 싶은 회사의 원하는 직무 팀에, 내가 지원 가능한 시기에 TO가 나는 것부터가 엄청난 행운이고요.)
특히나 신입 경우 면접까지 가면, 그곳에 모여있는 분들은 모두 비슷비슷하게 좋은 스펙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중에 누가 붙고 떨어지냐는 결국 면접관의 마음을 얼마나 사로 잡느냐인데 이건 개인 대 개인의 만남이라 주관적인 판단의 영향이 커요.
(개인적으로는 '함께 일하기 좋아보이느냐'의 여부, 즉 사회성이 얼마나 뛰어난지와 꼼꼼하고 성실해보이는 인상 같은 것이 중요하게 작동하는 것 같은데 이것도 사실 사람마다 평가 기준이 다를 수 있고요.)
그러니 사람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그때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그래서 추후에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어지더군요.
인생, 좀 더 좁혀 커리어란 것이 누군가의 스펙이나 노력에 비례해서 계단처럼 딱 서열을 지켜 정해지는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닫고 나자. 타인을 그런 커리어 기준으로 판단하는 일도 많이 줄어들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좋은 '타이틀'을 지닌 사람이라고 해서 딱히 그 사람이 엄청 똑똑하거나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증하지도, 혹은 인생에 있어 만족하거나 행복해하지도 않는다는 것도 사회 생활을 하면서 자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좋은 커리어를 쫓는 것은 인간으로서 너무나 바람직하고 마땅한 일이지만 그것에 집착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들이 알아주건 말건, 결국 일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메일에서 말씀하셨듯 안정감이 중요하다면, 그것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회사에서도 딱히 어떠한 '스펙'을 매력적으로 평가하지는 않는다...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학점, 외국어 실력, 대학교 이름 등은 보통 최저의 기준선, 이 지원자를 면접 자리에 부를지 말지를 가늠하는 기준 정도로 작용할 때가 많고요.
면접에서 보여주는 눈빛, 태도, 표정, 인상, 가볍게 흘린 표현 등이 면접관의 개인적 편견에 따른 척도와 잘 맞을 때 좋은 결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보통 한끗 차이로 결정되고, 개인이 어찌 할 수 없는 우주의 기준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때가 많고요.
그래서 더더욱 커리어와 자신의 가치를 연결 짓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연봉, 직장의 이름 등이 나의 가치를 증명한다고 생각하면 내가 원하는 연봉/직장에 못미치는 결과를 받을 경우 자기 자신까지 부정하게 되니까요.
열심히 살아왔다고 해서 꼭 좋은 결과가 보장되는 것이 아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세상에 대해 분노와 슬픔을 느끼기 쉬우니까요.
(모두 제가, 그리고 제 주변의 친구들이 겪었던 과정이기도 합니다.)
어떤 일에 열심히 힘하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해, 내가 스스로에게 부끄럽거나 나중에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임을,
그리고 그 결과는 나 뿐만 아니라 세상의 여러 우연적 요소가 결합되어 좌우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취업을 준비하시면
좀 더 준비 과정이 덜 힘들지 않으실까 싶습니다. (물론 이렇게 마음을 다잡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요....)
또한, 지금 당장은 내가 원하는 일을 얻지 못하게 되어 서럽고 힘들고 좌절스럽다가도 인생 어디선가 또 그 길로 향하는 문이 열릴지도 모르고요.
자포자기 상태로 선택한 일이 생각 외로 자신의 적성과 잘 맞아서 즐겁게 하게 될 지도 모르기도 합니다.
그러니 인생이라는 파도를 멀찍이서 지켜보거나 비장하게 대하지 않고, 어느 정도는 유연하게 즐기면서 올라타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름 길게 답변을 써보기는 했는데 추상적인 얘기가 많아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학생으로서의 남은 기간을 가치와 의미 충만하게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포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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