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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

포웰의 고민상담소 #1. 아직 서툰 사회 초년생, 웹소설 집필을 회사와 병행해도 괜찮을까?

 

 

 

트위터를 통해 모집했던 고민에 대한 답변 내역을,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분들도 보고 참고하실 수 있도록 본 티스토리에 아카이빙하고자 합니다.

고민으로 들어온 사연은 압축 및 각색하며 개인의 신원이 특정될 만한 정보를 최대한 가렸으나. 혹시라도 추가적으로 블라인드를 원하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편히 이메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원본 답변에 없던, 새로 추가한 내용은 이렇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사연>

 

저는 웹소설을 쓰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는 사회 초년생입니다. 다만 현재 웹소설 시장의 상황이 너무 좋지 않고 아직 자신의 글에 대한 자신감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본업에 완전히 숙달하지 못했는데 직장과 웹소설 집필을 병행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큽니다. 업무적인 스킬도 기르고, 더 큰 회사로의 이직도 준비하면서, 글도 쓰고 제 정신건강도 챙기려니 압도되는 기분이 되네요. ADHD까지 있으니 마음만 앞서고 더욱 통제가 잘 되지 않는 느낌입니다.
저처럼 아직 본업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고민하는 상황에서 웹소설을 도전해도 되는 것일까요? 만약 한다면 어떤 마음가짐과 루틴이 필요할까요? 참고로 본업 자체는 적성에도 잘 맞고 회사 내 평판도 어느 정도 괜찮지만, 아직 유의미한 성과는 내지 못한 상황입니다. 웹소설은 기획 및 초반부 집필만 해둔 상태고, 그 외 좋아하는 작품의 2차 창작도 해본 적 있습니다.

 

 

 

<답변 전문>

 

안녕하세요, 자세한 상황 공유해주셔서 사연자님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__) 
아래에 이어지는 내용은 어디까지나 제 경험에 의거한 개인적인 의견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정답은 아님을 감안해서 읽어주시면 감사 드리겠습니다.



1. 웹소설 연재 - 회사와의 병행에 대하여

일단 저도 회사를 다니며 웹소설을 연재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인데요, 솔직히 말해서 정말 힘든 일입니다.
제가 굉장히 감명 깊게 읽은 <실패하지 않는 웹소설 연재의 기술> (혹시 아직 안 읽어보셨다면 꼭 읽어보세요)에서도 웹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무조건 글만 생각하고, 다른 일들(취미, 가족, 친구 등등)은 모두 배제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는데요.

(*추가 코멘트 : 제가 이 말에 완전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글을 쓰는 만큼 어느 정도 희생을 해야 한다는 부분은 공감합니다.)


저도 한 몇 년 간은 거의 그렇게 살았던 것 같아요. 회사가 재택 근무를 시켜주고, 상대적으로 루틴하게 돌아가는 업무였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안 되는 스케쥴 & 상황이 되더라고요.
더불어 어쩔 수 없이 회사 일에는 소홀해지거나 에너지를 덜 쓰게 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특히나 아직 입사한지 N년(N<3) 밖에 되지 않았다면, 한창 이것저것 배우고 흡수할 시기라 더더욱 본업에 지장을 줄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현재 웹소설 시장이 정말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고, 호황기에 부풀었던 거품이 꺼지면서 (아예 망하지는 않겠지만) 당분간은 불안정성이 높아 보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만약에 제 주변 사람이 웹소설 연재 vs 회사 중 하나를(*하나만!) 골라 달라고 한다면, 저는 회사 쪽을 선택하라고 할 것 같습니다.
지금 하시는 일이 적성에 맞고, 회사 내 평판도 나쁘지 않으시니 더더욱요. 
(아직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하신 부분은 사회초년생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저는 (최근에 트위터에도 썼지만) 굉장히 다양한 업계를 거치고 또 여러 사람들을 만나봤는데요.
그런 경험 같은 것이 글을 쓰는 데에 엄청나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느꼈어요.
소재를 찾는 것 뿐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고 그 사람 심정에서 깊이 있는 감정을 서술하는 데에도, 
출판사와 협업하거나 독자/시장과 저 사이의 거리를 조절하는 데에도, 
일정을 관리하고 끈기있게 원고를 써나가 계약 사항 (작품 하나를 완결하는 것)을 지키는 데에도, 
모두 직장에서의 경험이 긍정적으로 작용을 미쳤습니다

글을 쓰다보면 아무리 천재적인 작가도 결국은 내면의 창작의 샘이 메마르는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다채로운 경험을 쌓아두는 것은 이럴 때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정말 많은 작가(및 지망생)이 본인의 실력과 무관하게 자신의 글을 완결까지 쓰지 못하기도 하거든요.
어떤 식으로든, 어떤 성적으로든 완결을 내는 지구력이 필요하고 저는 사회생활을 하며 이 부분에서 가장 크게 성장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가능하면 직장 생활을 좀 더 지속해보기를 추천 드립니다.


2. 그럼에도 글을 계속 쓰는 것에 대하여

위에서 제가 웹소설과 직장을 병행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고 얘기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놓지 않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 같아요.

(1) 목표를 스케일 다운하는 것

OO물을 쓰고 계시다고 말씀 주셨는데, 아직 초반부(10화 이내)만 쓰신 상황이라면 아직 너무 조금밖에 시도해보지 않은 것 같다고 감히 말씀 드리고 싶네요.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문피아에서 일반연재로 승급하려면 75000자, 대충 15화 정도는 써야 합니다. 그제서야 아마추어 작가로서의 스타트 라인에 섰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이지요.
일단은 이 일반연재 승급을 목표로 하여서 총 75000자를 주말 중 무리 안 가는 선에서 써보시고, 비축분을 연재하면서 일연을 따보시는 것부터 시작해보시면 어떨까요?
플롯, 전개에 대한 고민은 너무 오래하지 마시고 (초보자들이 가장 많이 빠지는 함정입니다) 최대한 빠르게 초고를 작성해서 올려보세요.

이미 구축된 캐릭터와 세계관, 팬 베이스를 바탕으로 한 팬픽과, 내가 완전히 제로에서 시작해서 쓰는 1차 소설은 이미 경험해보셔서 아시곘지만 서로 정말 다른 분야입니다.
(물론 2차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 1차에서도 잘 되신 경우도 많긴 합니다만, 반대로 2차에서는 잘 되었으나 1차에서 잘 안 되는 경우도 있으시니까요.)
본인이 1차에서 어느 정도로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선으로 평가 받으려면, 어딘가에 올려보는 것이 베스트입니다.
그리고 그 평가에 따라서 앞으로 어느 정도 나의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할 지도 정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 '평가받기'를 회피하기 위해 영원히 습작을 쓰거나 작품 구상만 하며 몇 년을 보내시기도 하지요...)

만약에 글이 너무 안 써진다면, '아티스트웨이' 같은 책을 읽으며 모닝페이지를 써보신다거나 
다른 웹소설 지망생들이 있는 글자수 체크 방(네이버 카페 '글담'에 가시면 많이들 모집하고 있습니다)에 들어가서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도 좋으실 듯합니다.

(2) 작품의 방향을 트는 것

OO물을 쓰고 있다고 말씀 주셨는데, 남성향 소설 경우 기본이 200~300편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직장을 다니며 병행하기에 더더욱 힘든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만약 가능하시다면) 시놉시스를 로판이나 BL 쪽으로 튼다거나, 혹은 여성향 장르에 어울리는 소재를 찾아보시는 것도 방법일 것 같아요.

여성향 장르는 남성향에 비해 1/3~1/2 정도의 분량으로 완결을 낼 수 있기에, 작품을 좀 더 빠른 사이클로 출간할 수 있어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도 비교적 적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스스로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많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면, 그럴싸한 성적(출판사와의 계약 혹은 그 이상)을 내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 아닐까요?
때문에 어떤 장르든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읽어보시고, 굳이 지금의 소재나 시놉시스에 집착하지 않고 현재 상황에서 쓰기에 가장 적절한 분량의 글을 써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3) 글의 필드를 바꾸는 것

저는 첫 1차 창작으로 첫 데뷔를 하고, 또 첫 웹툰화까지 할 수 있었던 운 좋은 케이스였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 전에 소설을 써본 경험이 많지 않기도 했어요. 
웹소설 역시 계약을 한 후에서야 처음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저는 글을 일반적인 사람들보다는 꾸준히 써온 편이었는데요...
-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때 끄적끄적 패러디 글을 써본 적도 몇 번 있고
- 대학교 졸업 후에는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어서 자기 고백적 에세이도 몇 번 써서 블로그에 올려봤고
- 친구들과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서 자유글(독서 감상문이든 일기든)을 쓰는 모임도 1년 정도 운영했었고
- 좋아하는 해외 팬픽이나 아티클을 번역해보기도 하고
등등 이래저래 장르를 가리지 않고 (비록 공백기는 자주, 길게 있었지만) 평생에 거쳐 글을 쓴 게 글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만약에 일기를 쓰고 계신다면 그걸 계속 하셔도 좋고, 컨텐츠에 대한 감상문이든 뭐든 계속해서 '감정적인' 글을 쓰면서 글에 대한 감각을 유지해 두시는 게 언젠가 웹소설을 본격적으로 쓰실 때 도움이 되실 것 같아요.

그리고 2차 창작을 몇 번 해보셨다고 하셨는데요. 가능하면 그것도 생각이 날 때마다 써서 올리시고, 기왕이면 장편으로 써보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제 경우 데뷔 직전에 2차 창작 패러디물을 몇 번 연재했는데요. 
모두 50편~100편짜리 중장편 소설이었고 완결까지 써서 조아라에 올렸었는데, 이때 쌓인 내공이랄까 경험이 1차 창작에도 큰 도움이 되었거든요.
자기 자신의 글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고, 글 근육도 생기게 되고, 타인의 반응에 대해서도 조금은 둔감화하게 되고요.

(*특히나 단편/장편 안 가리고 완결까지 써보는 경험이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정리하자면, 웹소설이 꼭 아니더라도 글을 계속해서 놓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고 여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에 이미 직장에서 너무 많은 글을 쓰고 있어서 추가적인 글을 쓰기가 힘들다면, 소재로 쓸만한 흥미로운 정보들을 하나의 공간에 스크랩해두거나 짬짬히 재밌을 거 같은 아이디어를 모아두는 것도 방법이고요.
(관련해서는 <소설쓰기의 모든 것 1권>에 자세히 나오니 해당 책도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게는 여러 가지 작법서들이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었기 때문에, 시중에 나온 글 쓰기나 창작에 대한 책들을 많이 읽어보시는 것도 결국 궁극적으로는 언젠가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3. 마무리하는 말

위에 굉장히 길게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적었지만, 사실 글을 쓸 사람은 어떻게든 결국 글을 쓰게 되어 있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평탄한 일직선 길로든, 꼬불꼬불 돌아가는 길로든.)
제가 좋아하는 책 <불렛저널>에도 내가 정말로 가치있고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일이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고 습관으로 삼는다는 얘기가 나오고요.
그래서 뭐랄까.. 작가가 되고 싶은 분들 모두 너무 안달복달하지 말고 '그냥 Let it be의 정신으로 사셔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것이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바쁜 일상 중 짬을 내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의 전 정말 정말 행복하고 재미있었거든요.
밤에 침대에 누우면 내일은 무슨 내용을 쓸까 설레여서 빨리 아침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이후 눈을 뜨면 부리나케 집 근처 카페로 달려가 눈을 비벼 가며 키보드를 두드리고는 했습니다.
친구를 만나지 않는 것도, 글을 쓰는 게 친구를 만나는 것보다 더 즐거워서 자발적으로 할 수 있었고요. 
덕질이나 취미를 즐기지 못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이 저에게 최고의 덕질이자 취미라서 괴롭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렇게 기분 좋게 글을 쓰려면, 나에게 글에 대한 부담이 없어야 하는 것 같아요. 또한, 내가 정말 쓰고 싶은 소재나 주제에 대한 것이라면 더욱 좋구요.
물론 그런 실마리를 찾는 것도, 원고를 처음 쓰기 시작하는 것도, 어딘가에 올리는 것도 모두 내가 노력하고 또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너무 많은 불안과 고민이 머릿속을 차지한다면, 아직은 시기가 너무 이른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불안과 두려움, 고민을 이겨낼 만큼 쓰고 싶어지는 이야기를 찾는다면 그때 본격적으로 시작하자고 정리하고,
우선은 매일의 일과 나 자신을 챙기는 데에 집중해보는 것이 어떠실까요?
3~40대에 웹소설 작가로 데뷔하시는 분들이 (저 외에도) 정말 많은 것을 감안하면 아직 늦었다고 걱정할 연령대도 아니시고요.
평소에 생각이 많은 편이라면 일상을 최대한 단순화하며 살아가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행복은 먹고 자고 기다리고>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어요.

저도 그리고 지금은 웹소설에 너무 몰입하기 보다는 "글과 생활에 경계를 두지 않고" 지내려고 애쓰는 중이기도 합니다.

...안 그러면 너무 크게 불타올라서 저 자신을 완전 잃게 되더라고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전적으로 사연을 보내주신 분에게 달려 있습니다만,
어떤 선택을 하든지 모두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포웰

 

 

 

(*인터넷에서 커리어 관련 여러 조언을 살피다보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 한다거나 지금 시작하면 벌써 늦었다는 얘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얘기에 크게 동의하지 않아요. 물론 인생에는 타이밍이라는 것이 있고, 운이 좋은 시기와 도전 시기가 맞물리면 1만큼 잘 될 일이 10만큼 부풀 수도 있긴 합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내가 그 일을 좋아하여 깊게 매진할 수 있는 진심, 그리고 어떤 일이 닥쳐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이어가는 힘도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세상에 드문 자질이기에 더더욱요,

천천히 느리게라도 좋으니 포기만 하지 마시고, 꾸준한 마음으로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