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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

포웰의 고민상담소 #2.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 어떤 길을 가야 안전할까요?

 

 

 

트위터를 통해 모집했던 고민에 대한 답변 내역을,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분들도 보고 참고하실 수 있도록 본 티스토리에 아카이빙하고자 합니다.

고민으로 들어온 사연은 압축 및 각색하며 개인의 신원이 특정될 만한 정보를 최대한 가렸으나. 혹시라도 추가적으로 블라인드를 원하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편히 이메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원본 답변에 없던, 새로 추가한 내용은 이렇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두번째 사연>

 

저는 현재 대학교 2년 재학 후 장기 휴학을 한 상황입니다. 취업에 유리하기는 하나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으로 인하여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고 결과적으로 학점이 굉장히 안좋습니다. 공부하며 긍정적인 감정이 든 적이 한번도 없고, 한번 복학했다가 우울증으로 인해 다시 질병 휴학까지 신청할 정도였습니다. 재수로 전문직에 종사할 수 있는 다른 과를 가는 것도 시도해봤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고, 방학 동안 추가적으로 현재 전공에 대한 공부를 해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네요.
하지만 이대로 지금의 전공을 포기해도 괜찮을지 두렵습니다. 어느 과를 가야할지도 모르겠고요. 좋아하는 분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살리면 생계의 불확실성이 심해서 포기했습니다. 그냥 학점은 적당히 챙기고, 공무원 시험을 노려볼까 싶기도 합니다. 부모님은 이런 저에게 너무 늦었다고 닦달하시는데, 현 전공에서 학점을 잘 챙겨보는 것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 아예 새로운 길을 찾는 것 중에 어느 쪽을 택해야 할까요?

 

 

<답변 전문>

 

 

안녕하세요, OO님
현재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 이렇게 메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재학과 휴학 기간 합하여 아직 20대 초중반의 연령대일 것이라고 감안하고 답변 드리겠습니다.



1. 전공에 대하여

OO과를 다니는 것이 굉장히 두렵고 어려우신 상황 같은데, 굳이 그걸 계속 잡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요?
거기에 지금까지 들인 매몰 비용이 아까워서 앞으로의 평생을 낭비하는 것은 너무나 아까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당장 OO 쪽이 전망이 좋고 취업이 잘된다고 해도, 미래에도 계속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고요.
게다가 그 과에는 적성에 그럭저럭 혹은 잘 맞아 즐겁게 다니는 학생들이 많을 텐데, 그런 학생들과 경쟁해서 이겨야 하는 상황 자체가 졸업 후에도 계속 이어진다면...
졸업 후에도 지금의 불안과 괴로움이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따라서 제가 보기에는, 지금 당장은 사연을 보내주신 분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잘 하는지 탐색하는 데에 초점을 둬야 할 것 같습니다.
한번 다른 과의 수업들도 청강으로 다양하게 들어보세요. 도서관에서 마음이 이끌리는 책들을 가리지 말고 읽어보세요. 길 가다가 강연 포스터를 발견하면 일단 신청해 보세요. 
그렇게 자신이 전과, 혹은 복수전공할 만한 과를 찾아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물론 세상 사람 모두가 본인 적성에 맞는 전공을 택하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제가 근무 중인 팀에는 정말로 다양한 전공의 사람들이 근무하고 계시고, 전공과 무관한 일을 하는 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서술하신 만큼의 괴로움과 자괴감, 낮은 자존감을 안고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20대 시기를 보내는 것 역시 자기 자신에게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에서 배우는 것이 학문 뿐만이 아니라, 사람들과 교류하고 소통하고 나 자신을 더욱 잘 알아가는 것임을 감안하면 더더욱요.
충분히 방황하고 겪어보고, 그 다음에 스스로 선택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주변에서 누가 뭐라 하든지 한 귀로 흘러 보내면서요. 
(특히 부모님은 요즘의 세태를 잘 모르십니다. 그냥 옛날 분들이 고리타분하고 어리석은 말을 하시는구나, 하고 넘기세요. 요새 첫 직장을 30대에 다니시는 분도 많은 걸요. 전혀 늦은 나이 아닙니다!)

(*부모님이 젊으셨던 시절의 취업 시장과 지금의 취업 시장은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아시는 얘기도 누군가 자기 자식 자랑하면서 언뜻 흘린, 부정확한 정보일 가능성이 많고요.

최근의 취업 트렌드라든가 진로 이슈에 대해서는 부모님 얘기만 듣기보다는 주변의 또래 혹은 선배의 이야기를 많이 귀담아 들으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2. 공무원 준비에 대하여

전문직을 꿈꾸고 지금도 OOO 대학교에 다니고 계신다면 공부를 꽤 잘하시는 편이고, 그래서 공무원이라는 길도 고려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제 주변 사례를 봤을 때 시험부터 준비하는 것은 다소 말리고 싶습니다.

제 주변에는 대학교 시절부터 각종 시험(고시, LEET, PEET, CPA 등등)을 준비하는 똑똑한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험을 준비하다가 소리 소문 없이 연락이 끊기거나, 시험을 보는 것 자체에 중독되어서 시험 A 도전 -> 실패 -> 시험 B 도전 -> 실패 -> 공기업 입사 -> 퇴사 후 다시 다른 시험 도전..을 하는 사례도 자주 봤고요.
시험이라는 게 그날의 운도 중요하기 때문에, 머리가 좋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한끗 차이로 실패하기 쉽습니다. 거기다 오랜시간 동안 홀로 고립되면서 자아상이 왜곡되거나, 정신적으로 불건강해지기도 쉽고요.
또 '내가 잘 하면 이룰 수 있었던 것'이 눈 앞에 아른거리기 때문에 자신의 현재 위치에 만족하기 힘들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다른 일을 충분히 해보고 그래도 여전히 현실이 불만족스럽다면 그때 준비해도 전혀 늦지 않은 게 공무원(*그리고 각종 자격증을 바탕으로 한 전문직)이라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너무 좁혀 버리는 건데, 그건 아까워요.

특히나 써주신 내용을 보면 어떤 일이든 그냥 주어진 대로 그럭저럭 해나가는 타입이 아니라,
자신의 좋고 싫음이 확실하고 또 기본적으로 예민함이 높은 성향인 것 같습니다.
그런 분에게는 더더욱 다른 일을 해보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원에도 학부를 거쳐 바로 진학한 분들보다, 직장 생활을 거치고 오신 분들이 정신적으로 강하고 튼튼할 때가 많습니다.
자신이 다른 일을 해보고 돈도 벌어봤지만, 그럼에도 공부가 더 하고 싶은 일이라는 확신을 경험을 통해 체득한 상태이니까요.
또한, 사회생활로 맷집이 단단해졌다 보니까 사소한 일에 덜 흔들리기도 하고요.
공무원 준비에도 저는 비슷한 원리가 적용되지 않을까 싶네요.

 

(*인생에 있어서 효율적인 길을 일직선으로 가는 것만이 꼭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특히나 생각이 많고 매사에 의미를 고민하는 성격이라면 더더욱요.

다소 미련하고 바보 같아 보여도 이리저리 직접 부딪혀보면서 찾아나간 길을 걷는 쪽이 더 행복할 수 있더라고요.) 


3. 마무리

말씀하신 여러 가지 진로의 길 중에 어떤 것을 택해도 인생 자체는 늘 불안하고 한치 앞도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0대에 부지런히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내게는 무엇이 중요하고, 나는 어떤 것을 잘하는지 등등....
그렇게 자신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조금은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나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또 그 고민을 행동에 옮겨보면서 20대를 보낸다면, 어떤 진로를 택하든 잘 해내시리라 생각합니다.
반대로 남들이 다 겪는 사춘기 시절을 제대로 겪지 않는다면, 평생을 방황하면서 보내게 되고요.
지금 당장 나는 사춘기 시기를 잘 보내고 있구나,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충분히 헤매어 보세요.
분명히 뭔가 하나는 마음이 끌리는 것이 보이시리라 확신합니다.
(아니라면 그때 공무원을 택하면 되는 것이구요!)

(*혹은 진짜로 돌고돌고 또 돌아 다시 원래의 전공 OO를 선택하게 될 수도 있죠?! 인생이란 게 원래 알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래도 그렇게 된다면 최소한 그때는 그 공부가 재밌게, 할 만 하게 느껴질 거예요.

사연자분이 수많은 갈림길 중에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는 믿음과 자부심, 왜 이것을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포웰

 

 


(*정말 많은 분들이 20대 시절을 뭔가 실용적인 것(자격증, 학점, 대외활동 등등)으로 꽉꽉 채워야 한다고 생각하시는데요.

'앞으로 내가 어느 방향으로 살아갈지?', '나에게 인생의 무엇이 중요한지?' 같은 추상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면서 나라는 사람과 나의 인생관을 좀 더 또렷하게 알아가기도 하고,

공부하느라 소홀했던 대인 관계나 협업, 커뮤니케이션 스킬도 좀 더 디벨롭하여 '같이 일하고, 어울리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도 이 못지 않게 중요한 것 같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나에게 안전한 영역을 벗어나 도전해보고, 스스로 선택한 길에 대한 책임을 져보는 것,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는 것 등이 필요하고요.

물론 인생이란 항해에 있어 불안은 언제나 바람처럼 동반되지만, 흔들렸다가도 금방 차분해질 수 있는 마음의 닻을 얻는다면 훨씬 덜 울렁거릴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