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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

포웰의 고민상담소 #5. 작업 기억력과 해외 취업/진로 문제로 고민하는 ADHD


 

 

트위터를 통해 모집했던 고민에 대한 답변 내역을,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분들도 보고 참고하실 수 있도록 본 티스토리에 아카이빙하고자 합니다.

고민으로 들어온 사연은 압축 및 각색하며 개인의 신원이 특정될 만한 정보를 최대한 가렸으나. 혹시라도 추가적으로 블라인드를 원하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편히 이메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원본 답변에 없던, 새로 추가한 내용은 이렇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섯번째 사연>

ADHD 치료를 시작한지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만, 최근 새로운 직업(영상 쪽)에 도전하기 위하여 학원을 다녀보니 작업기억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툴 사용법도 자꾸 잊어버리거나 혼동하여 수업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충분한 복습 시간을 가지며 연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이 큽니다. 제가 이 일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창의력을 가지고 있는 게 맞는지, 좋아했던 것들의 교집합이자 해외취업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이 길을 선택한 것이 옳은지도 회의감이 듭니다. 최근 AI 이슈로 인하여 해당 업계 전체가 흔들리면서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큰 것 같아요. 제 선택이 맞았는지, 제 창의성 유무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지, 이런 저에게 어울리면서 해외로 진출하는 데에도 유용한 직군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답변 전문>

 

안녕하세요, 
작업기억능력으로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저도 평소에 많이 느끼고 있는 거라서 공감이 많이 가네요.
우선 문의 주신 내용에 대해서 나눠서 답변을 드려보겠습니다.


1. 작업 기억력에 대하여

답변마다 책을 추천하는 것이 살짝 민망하기는 한데, 제 경우 <마지막 몰입>에 나온 작업기억력 높이는 방법이 좀 도움이 되었어요.
그리고 저는 절대 제 기억력을 믿지 않고 모든 것을 기록해두는 편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폴더 복사하기'라면.. 마우스 커서 옮기기 -> 마우스 오른쪽 버튼 클릭 -> '복사하기' 누르기 -> 다시 이동 -> 우클릭 -> '붙여넣기' 식으로 엄청 자세하게요.)
이렇게 기록한 건 구글 Docs에 옮겨두고 나중에 검색으로 찾을 수 있게 하고요.
강의를 따라가기 어려울 때에는 녹음을 해뒀다가 다시 들으면서 쓰기도 합니다.

그리고 강의 내용을 가만히 보는 것보다는 직접 따라서 할 때 훨씬 더 잘 익히는 편이라서... 
저라면 강의 들으면서 따로 실습 시간을 줄 때 하지 않고 강의 중에 실시간으로 따라하면서 들어볼 거 같아요.
또한, 개인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할 때 더 잘 기억할 수 있는 편이라 학원에서 배우는 것을 덕질과 연관지어서 뭔가 따로 작업물 하나를 만들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학원이 많은 수강생을 두고 단기간에 빠르게 진도를 나가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그런 환경 자체가 잘 맞지 않아 산만함이 커질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런 과정과는 맞지 않아서 개인 혹은 소규모 수업을 선호하는 편이거든요.
너무 일찌감치 자신의 능력에 대해 좌절하시기 보다는 한번 자신에게 더 잘 맞는 다른 교육 과정을 알아보시는 것도 방법 아닐까 싶습니다.

 


2. 창의성에 대하여

저는 본업(광고마케팅)에서도 부업(글쓰기)에서도 창의성이 중요한 상황인데요.
창의성이 어떤 고정적인, 타고난 특성이라고 보는 의견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편입니다.
그것보다는 개인이 얼마나 갈고 닦느냐에 따라서 더욱 깊어지기도 하고 늘어나기도 할 수 있는, 아주 가변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몇 번 트위터에서 추천한 <창작형 인간의 하루>, <소설쓰기의 모든 것>, <쓰지 않으면 아이디어는 사라진다>에도 반복적으로 나오는 얘기입니다만,
결국 아이디어를 내고 결합하는 것도 훈련하기에 따라 단련할 수 있다고 봐요.
또 기본적으로 창작이란 이미 있는 것들에서 영감을 얻거나 변형하는 일이 많아 꾸준한 인풋으로 아웃풋이 좋아지기도 하고요.
(반대로 타고나기를 창의적인 사람도 인풋 없이는 메말라 버리기 쉽상이고요.)
그러므로 스스로 내가 충분히 창의적인 사람이느냐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창의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꾸준히 뭔가를 쌓아 나가는 성실성(=나만의 루틴)이 필요하고, 
또 어디든 회사에 소속되어서 일할 때에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하므로 (특히나 외국인들 사이에 근무할 때에는 더더욱) 이런 쪽에도 신경 쓰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더불어 일을 일정 기간 내에 잘 끝내는 시간/태스크 관리, 주어진 업무를 자잘한 실수 없이 마무리하는 정확성 등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제가 현재 회사에서 영상 작업자분들과 협업하면서 '이분 참 일 잘한다'라고 느끼는 지점은 이런 측면들이어서요.)

이 모든 것이 ADHD인의 자기 개발/자기 관리 영역에 들어가기 때문에, 관련하여 CBT 방식을 많이 찾아보고 일상에 적용해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 됩니다.


3. 직업에 대하여

다만 현재 목표로 하는 직업을 고른 것에 대하여 취향의 교집합 + 해외취업을 위해서라고 말씀 주셨는데요.
해외취업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그 직업을 계속 해나가도 괜찮을지에 대해서도 한번 스스로 자문 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AI 툴의 발달로 이런 창작 계열의 TO 자체가 계속 줄어들고 있고, 세계 전반적인 분위기가 이민자를 그다지 환영하지 않는 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오는 제약도 있을 것 같아서요.


또한, 제가 다른 취업 관련 답변에서도 얘기했지만 취업 자체가 운이 굉장히 많이 작용하는 영역인데 여기에 해외 이주라는 변수까지 더해지면 불확실성이 높아져, 
특정 누군가가 어떤 직업군을 바탕으로 이민에 성공했다고 해서 그게 내 얘기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아니니까요.
아무래도 학부에서 관련 전공하신 게 아니고 지금 툴을 막 익히시는 단계라면 국내에서 어느 정도 경력을 쌓고 포트폴리오도 만드셔야 할 거 같은데 
그런 기간을 거친 후에 해외로 가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셔도 괜찮을지 - 다시 말해 이 일이 내 적성에 맞는지 - 가 이 일을 택해도 될 지를 좌우하는 Key가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정말로 해외 취업이 가장 간절하다면, 해외 취업 관련된 글에 자주 추천 직업으로 나오는 전문직/기술직(간호, 치기공, 토목 등)으로 다시 진로를 알아보시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어요.
(제 전문 분야가 아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디자인/영상 이런 쪽의 직무는 한국과 해외의 감성/취향이 서로 다를 수 있어서 이 벽을 뛰어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구나 하는 추측이 들거든요.)
그게 아니고 내 적성에 잘 맞는 직업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 해외 취업과 무관하게 내가 정말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살펴보는 게 나을 것 같고요.
(관련해서는 커리어넷에서 할 수 있는 여러 직무적성 관련 검사들을 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작성해주신 이메일 내용만 봤을 때에는 딱히 직업을 추천해드리기에 충분한 정보가 없어서요.)
어느 쪽이든, 이 우선 순위가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더 불안하고 초조함이 크신 것 아닐까 싶습니다.

 

(*다시 말해, '해외에서 사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다소 적성에 안 맞는 직업이라도 감내할 것인가', '해외에서 살 수 있는 기회는 다소 포기하고서라도 나와 잘 맞는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 라는 부분에 대해 어느 한쪽을 명확하게 택하시는 편이 많은 고민과 불안을 해소하는 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면 다른 것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 세상 불변의 진리이기도 하고, 솔직히 외국인으로서 어느 나라에서 근무한다는 것 자체가 선택지를 많이 좁힐 수 밖에 없는 것이기도 해서요.)


제 경우에도 직접 해외에서 거주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살이가 그다지 저에게 맞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월드잡 같은 데를 방문해서 상담했을 때 거기에서 해외 취업에 유리하다고 얘기하는 직업 리스트가 제가 하고 싶고 자신 있는 직업과 일치하지도 않아서
(다른 분들의 사례를 보니 원래 하던 일이나 커리어를 포기하고 새로운 일을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게까지 간절한 것도 아닌 것 같았고
솔직히 어떤 직업을 택해도 '100% 해외 취업이 보장된다'라는 것은 없는 와중에 리스크 테이킹을 하고 싶지 않기도 했고요.)
그냥 깔끔하게 포기하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단기 파견을 가거나 한두달 살자, 하고 마음을 정리하니 마음이 편해졌거든요.

혹시 해외에서 장기로 체류했던 경험이 없으시다면, 우선은 워킹 홀리데이 등의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 아닐까 싶네요.
아무래도 직접 부딪혀 보는 것이 호불호를 가장 확실하게 알고 현실을 깨닫는 방법이기도 해서요.
혹은 좀 더 '해외스러운 분위기'에서 일하며 (아닌 곳도 있지만) '해외 근무할 기회도 열려있는' (이것도 아닐 수도 있지만) 외국계 회사(그래도 완전 국내 기업보단 가능성이 있는)에 입사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제 경우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외국인들과 함께 일하는... 그런 international한 업무에 대한 환상이 많이 깨진 게 있거든요.


저도 취업에 대해 고민이 깊어 여러 가지로 시도를 했었고 (C언어나 유니티를 배운다거나 공연 관련 동아리에 들어간다거나),
그 중에서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느껴 탈주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래도 덕분에 제가 갈 길을 좀 더 좁힐 수 있었고요.
어떤 길을 갔다가 아니다 싶으면 새로운 갓길로 빠지거나 돌아갈 수도 있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니 뭔가를 시도해 보고 실패하시는 것에 주저하지 마시고 과감하게 여러 도전을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한주 되시길 바라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포웰